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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의두문책장(如意頭紋冊欌) 요약정보 및 구매

조선시대 / 87.5 x 37.5 x 6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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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 87.5 x 37.5 x 6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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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의두문책장(京畿道 如意頭紋冊欌)

가로 : 87.5cm 

세로 : 37.5cm

높이 : 68cm


책장()은 책을 넣어 간수하기 위한 수납가구로, 중국식 명칭으로 서주()라고도 하였다. 대개 2, 3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층마다 여닫이문을 따로 단 것과, 하나의 긴 문 속에 여러 개의 층널을 설치한 것이 있다. 이는 책을 꽂는 형식이 아니라 뉘어서 여러 겹으로 쌓도록 되어 있어, 한 층에 많이 쌓으면 꺼내 보기 불편한 점을 보완하기 위함이었다.

옛 서책은 크기가 크고 부피가 많았던 까닭에 책장의 규모도 이에 대비에 문짝을 크게 만들었고, 또한 문짝을 활짝 열기 위해 책장 옆널 좌우에는 머름칸, 쥐벽칸을 생략하거나 작게 하여 경첩을 문판과 기둥에 직접 부착했다.일반 가정에서는 책장 대신 책궤, 즉 반닫이를 사용하기도 했다.

여의두문은 뿔이나 대나무 또는 쇠붙이 등으로 전자()의 (심)자를 나타내는 고사리모양의 장식문양을 말한다. 여의는 범어 아나률타(Anuruddha, )의 번역으로 승려가 독경()·설법()·법요()·논의()할 때 강사()가 지니는 도구이다. 또, 강론하는 스님이 혼자서 글을 기록하여 두고 참고하는 데 쓰는 것이라고도 하며, 혹은 등의 가려운 데를 긁는 기구로 쓰였다고 한다.

여의란 모든 것이 뜻과 같이 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불교 전래 때 인도로부터 유입된 것이라 한다. 여의의 형태는 도교()가 흥할 당시 영지()·서운() 등 상징적인 사물에서 그 형태를 본뜬 것인데 길상()과 축송()에 쓰이는 물건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불교와 관련된 모든 조형미술에서 그 형상이 장식되었으며 건축양식을 비롯하여 가구()·잡기() 등에 다양하게 나타난다.

또한 여의의 문양은 ‘평안여의()’·‘사사여의()’·‘백사여의()’·‘만사여의()’·‘길상여의()’·‘화합여의()’ 등의 문구로 해석되어 그에 해당하는 여러 상징적인 그림을 그려서 붙이고 축송하였다.

여의두문의 머리형식은 보상화문()에서 본뜬 것이며 그 형식은 구름무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보인다. 즉 서방에서 기원하는 팔메트(palmette)문양이 간다라 미술에서 새로운 모양을 이루고, 다시 간다라식 팔메트문양이 한대()의 고식() 인동문형식()과 혼합된 불교미술 양식으로 나타난다.

팔메트장식문양은 신라 고분인 금관총() 출토 금동초두()의 손잡이를 비롯하여 각종 관식() 등 장신구와 그 밖의 장식물에 나타나며, 그 형태가 통일신라시대를 즈음하여 연화문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 팔메트의 요소는 화려한 보상화문 양식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과 영지의 모양을 혼합한 도안무늬가 여의두문이다. 여의두문은 고려시대 말엽 공예의장의 특징을 이루는 연판문대()를 대신하여 조선도자()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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