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금산수도(泥金山水圖), 전 허주 이징(傳 虛舟 李澄)
가로 : 62cm
세로 : 100cm
이징은 화가 이경윤(李慶胤)의 아들이다. 화가 집안 출신으로 가업을 이어받아 그림을 잘 그렸으며, 벼슬은 주부를 지냈다. 1605년(선조 38)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되어, 1628년(인조 6)에 태조의 영정 개수작업에 참여하여 동반 6품을 제수 받았다.
1638년에는 인조와 계비 장렬왕후의 가례에 사용할 <십장생도> 10곡 병풍을 그리기도 했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산수화가로서, 중국 송·원나라의 산수화법을 견지하던 조선 전기의 전통적인 화풍에다 명나라 초기의 원체화풍과 절파화풍을 혼용한 것이 특징이다.
한편 기러기·독수리 등의 새 그림은 전기의 전통과는 다른 명나라 임량(林良)의 화풍을 보이고 있다. 그의 그림에 대하여는 "각 체에 모두 뛰어나 가히 대가라 할 수 있으나 일정한 화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여 비록 해박하나 웅장하지 못하고, 정밀하나 묘하지 못하고, 기교는 있어도 자연스럽지 못하니 평범한 것이 그의 폐단이다."라는 당대의 화평이 있으나, 정교하고 치밀한 가작을 많이 남겼다.
다보성 소장 작품은 니금기법으로 되어 있다. 니금기법이란 금분에 아교를 섞어 바르는 것으로 화려하면서도 품격이 있어 불화 등에서도 널리 쓰여졌다. 이징은 원래 이 기법을 즐겨 사용하여 현재 그의 작품이라고 칭해지는 것 중에는 이런 니금산수화가 적지 않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두 가지 경향으로 나뉜다. 하나는 가법을 이은 절파화풍이며, 다른 하나는 보다 전통적인 안견류 화풍을 계승하여 나름대로 발전시킨 화풍이다. 다보성 소장 니금산수도는 후자에 속한다. 전체의 구성이 보다 확산되어 원경의 산들이 작고 낮게 처리되어 있어 평원적 느낌을 증가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안견류 화풍의 강한 전통을 잇는 점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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