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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기호(土器壺) 요약정보 및 구매

삼국시대 / 20 x 8 x 10.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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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기본설명

삼국시대 / 20 x 8 x 10.5cm

상품 상세설명

토기호(土器壺)


총 높이 : 20cm

입지름 : 8cm

바닥지름 : 10.5cm


토기는 점토를 물에 개어 빚은 후 불에 구워 만든 용기로, 신석기시대 이래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과거의 수렵·채집생활에서 농경을 바탕으로 하는 정착생활로 전환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고, 식수를 담아두는 용기가 필요하게 되면서 출현하였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구덩이나 풀로 만든 바구니, 목기 등을 토기 대신에 사용하였으나 점차 흙을 반죽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 말려서 쓰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불에 타서 단단해진 것을 보고 토기가 발명되었다고 한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라 부르고,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라 부르는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나오는 유약을 바른 자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토기라 부른다. 토기는 만들기 쉬운 반면에 부서지기 쉬워서 신석기 이래로 유적 출토품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유물이다.

신라토기는 타날문토기가 발전한 것으로 정선된 태토에 굴가마에서 환원염으로 구웠으며 녹로를 사용하여 다량으로 생산하였다. 고온으로 구워진 경질토기로 흡수성이 거의 없고 표면에 유약을 바르지 않았으나 자연유가 부분적으로 덮여지는 경우도 있다. 기형은 기본적으로 굽다리접시와 목긴항아리가 있으며 특색 있는 기형에는 동물형토기와 토우가 있다. 세부 형식에서 신라군과 가야군으로 나누어진다. 신라군은 자체적으로 토기가 발전한 반면에 가야군은 청동기나 목기의 형식을 본뜨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신라·가야토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다양하고 세련된 침선문이 위주가 되어 있다. 고식도질토기라고 부르는 초기의 토기에는 무늬가 잘 베풀어지지 않으나 신라토기와 가야토기로 분화하는 시점인 4세기 후반에서부터 뚜껑과 몸통에 각종의 무늬를 시문하게 된다. 이 때의 토기 무늬는 다양한 치구()를 이용한 기하학적인 무늬와 선각화문()으로 나눌 수 있다. 신라토기의 무늬를 시기별로 정리하면 밀집파상문과 점열문이 처음에 등장하고 차츰 집선문, 원권문, 삼각거치문, 침엽문(어골문) 등의 기하학적인 무늬가 성행한다. 그리고 6세기 무렵에는 삼각형을 연결한 거치문과 그 아래 반원문을 연접한 거치반원문이 유행하면서 토기에의 시문범위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

한편 6세기 후반부터 통일신라에 이르는 소위 통일양식 토기기의 토기에는 침선문 위주의 무늬가 사라지고 대신에 갖가지 무늬가 새겨진 도장을 이용하여 찍어낸 인화문이 유행하게 된다.

본 유물은 구경부가 나팔처럼 벌어지고 둥근 원형 동체를 가진 환저호이다. 동최대경은 동중위에 있으며, 바닥의 일부는 이지러졌다.


[네이버 지식백과] 토기호 (e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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